바둑가에서는 일류급 기사(棋士)가 되려면 자기만의 ‘기풍(棋風)’이 확실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기풍이란 기사의 철학과 개성을 뜻한다. 즉 바둑판 안에서 어떠한 전략에 우선 가치를 두고 있느냐다. 어떤 이들은 A 수가 좋다고 하지만 자기는 B 수가 더 좋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수가 기사의 기풍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세계 최다 타이틀 보유자인 조훈현 9단은 전성기 시절 상대방을 정신없이 만드는 빼어난 전투감각으로 전신(戰神)이란 애칭을 들었다. 반대로 이창호 9단은 아무리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는 탁월한 균형감각과 정확한 계산력에 돌부처란 별칭을 들었다. 이들은 자신만의 기풍을 극대화시켜 세계 바둑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반면 기풍이 뚜렷하지 않은, 한 마디로 상황에 따라 기풍이 달라지는 기사들은 대체적으로 성적이 좋지 못했다. 기풍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만의 신념이 부족한 모습으로 승부사로선 함량 미달이다.
식품・외식업계에선 뚜렷한 기풍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업체들이 참 많다. 이들은 철저한 실패를 맛보고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몇몇 식품제조업체들은 신성장동력을 마련한다고 외식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불어난 적자에 놀라 얼마 못가 손을 털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외식업체는 식품제조에 손을 대고 나서 외식과 다른 규모의 경제에 놀라 어찌할 줄을 몰라 한다.
급식업계도 외식사업이 같은 카테고리의 연장선이라 만만히 봤다가 급식과 전혀 다른 고객 니즈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물론 이 중에 몇몇 기업들은 양다리 전략도 훌륭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성공사례의 대부분은 총알(자본력)이 든든하게 뒷받침된 대기업이란 함정이 있다.
최근 한식뷔페가 큰 인기를 끌면서 관련 기업들이 매장을 확대하고 신규 브랜드를 앞 다퉈 론칭하는 모습은 반가우면서 이질적이다. 한식이 외식문화의 중심이 되는 것 같아 보기 좋지만 한편으론 장인 정신의 추구는 온데간데없어 보인다.
외식은 서비스산업이며 문화다. 또 그 중심에는 고객이 있다. 자본 논리로 움직이는 산업이 아닌 문화와 서비스, 장인 정신이 결합한 유기적인 산업이라 믿고 싶다.
앞으로 국내 식품외식업계에 각자의 기풍을 살리는 진정한 고수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그래야 우리 식품외식업계도 여느 선진국과 같이 전통성을 살린 기업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만났던 김 모 셰프는 국내 외식업계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는 “국내 외식업계는 돈 되는 일에만 혈안이 돼 유행에 민감하고 자극적인 아이템만 찾으려고 한다”며 “속도가 더디더라도 좋은 식재와 정성이 깃든 외식 고유의 가치를 고객에게 전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에 있는 많은 이들이 한 번쯤 곱씹어볼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