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소통의 리더십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소통의 리더십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5.05.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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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 전주대 객원교수·(전)전주대 문화관광대학장
▲ 최종문 전주대 객원교수·(전)전주대 문화관광대학장

지금의 우리나라, 참 어렵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급격히 추락한 정부와 정치권의 신뢰도는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수습되고 회복하기 보다는 나라 전체의 총체적 리더십의 위기로 치닫는 낌새마저 엿보이기 때문이다. 경기의 장기침체와 성장둔화라는 악재도 그 부정적 여파에 다름 아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3.5%에서 3%로 하향조정했는데 그마저 구조개혁 정책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하거나 통화 및 재정정책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올해 2%대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니(조선 비즈 2015. 5. 20.) 신뢰상실과 리더십의 위기는 얼마나 끔찍한가.

정치적 신뢰와 리더십의 회복이 절체절명의 과제요 역사적 소명이어야 하는 이유다. 리더십과 관련한 논의에서 나는 음악감독 또는 지휘자 이야기를 많이 인용한다. 정부, 정당, 기업, 사회단체 등의 리더십 전개과정이 오케스트라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2년전 81세로 세상을 떠난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는 음악가에게 꼭 필요한 예술적 덕목에다가 흔히 빠트리기 쉬운 지성과 양식, 인품 등 윤리적 덕목을 두루 갖췄다. 

그가 남겨놓은 음악적, 정신적 유산은 참으로 귀하고 풍성하다. 그 중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나 협주 앙상블, 또는 독주자들과의 관계에서 보여준 겸손, 소통과 배려의 리더십은 단연 압권이다. 젊은 시절 스승이었던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과 아주 닮은꼴이다.

번스타인이 ‘좋은 지휘자는 좋은 연주를 끌어내는 것 뿐 아니라 단원들이 연주를 즐기게 할 수 있는 사람’ 이라고 정의하고 구체적 실천으로 옮겼듯이 아바도 역시 1989년 ‘베를린 필’ 취임 시 단원들에게 자신을 ‘여러분의 보스가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으로 선언하고 내내 실천했다는 사실이 그 근거다. 

아바도 이전 카라얀 시대까지 잘 나가는 지휘자란 카리스마로 포장된 독점적 권력자, 막강한 일인 통치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바도 이후는 크게 달라졌다. 지휘자는 주어진 권한을 배타적, 수직적으로 행사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협조적, 수평적인 자세로 더 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조정자였다. 그 맨 앞에 아바도가 서 있었다. 

그에게 오케스트라는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단순한 수단, 또는 도구가 아니라 믿음직한 파트너였다. 각자 책임 하에서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협업체제였다. 동반자정신에 입각한 협업체제의 유지, 그것이 바로 아바도가 추구한 지휘철학이었던 셈이다. 

그는 오케스트라에게 미주알고주알 이래라 저래라 지시를 하지 않는 대범함으로 일관했다. 스스로 음악에 가장 적절한 연주를 하라는 뜻이었다.

그의 지휘는 미리 설정해 놓은 어떤 방향성에 따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듣고 소리를 내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끝까지 단원들을 믿었고 그렇게 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의 베를린 필 재임 12년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덜 알려진 작품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를 늘리는 한편 권위주의적인 악단의 체질을 바꾸려 노력했지만 단원들과 청중들의 마음을 확실히 얻지는 못했다.

그는 결국 2002년 베를린 필을 떠났다. 그가 당초 단원들의 직접투표로 선임됐고 관행상 종신직을 전제로 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의 중도사퇴 역시 빛나는 용단이었다.

그러나 이런 스타일의 ‘수평적’ 또는 ‘민주적 리더십’이 시공을 초월해서 반드시 성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우수한 연주자들의 집합체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들이 전적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탁월한 지휘자가 있어야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음악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능력, 신뢰, 희생, 봉사, 소통, 꿈과 비전 등 성공의 필요, 충분조건을 확실히 공유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우리 정치권의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불통(不通) 트라우마’도 번스타인과 아바도 스타일이라면 능히 극복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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