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세계화 사업 잔상
한식세계화 사업 잔상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6.03.2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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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12대 원장), 한국식품건강소통학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농수산학부 정회원)
▲ 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12대 원장), 한국식품건강소통학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농수산학부 정회원)

우리나라는 전 세계 여느 국가와 비해 뒤처지지 않은 5천년 이상의 농경역사와 개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세계가 산업화 시대 이후, 고성장시대를 지나 저성장시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경제시대의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이전 고성장시대, 산업화시대의 패러다임으로는 지속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성장시대에서 지속성장을 이끌려면 경쟁이 아닌 공유, 일이 아닌 삶, 성장이 아닌 성숙, 제품과 기술이 아닌 인간,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는 가치와 콘텐츠 등 숨을 쉬고 즐길 수 있는 스토리의 힘, 즉 소프트파워가 성장의 원천이다. 창조경제도 이러한 기본 바탕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저성장시대에 각 나라의 식품산업 성장조건에서 농경역사를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한식이 세계화되기에는 첨단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통과 역사와 문화, 과학 그리고 삶의 질 등 이에 대한 스토리가 중요하다. 이 힘의 원천은 오로지 우리나라의 오래된 농경역사와 그 문화에서 나온다.

우리는 지난 정부 때부터 한식세계화 계획을 추진해왔다. 영부인까지 나서서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식품학자로서 반길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 결과가 당초 목표에 비해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다.

식품산업을 산업화시대의 고속성장 마인드로 추진하는 정부를 보고 그 결과를 어느 정도 예견했지만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오히려 세계에서 한식당이 그 기간에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한식세계화가 식당 수를 늘리고 인위적으로 일류 한식당을 육성해 수출을 늘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특히 궁중음식을 중심으로 메뉴만 개발한다고 고급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소프트파워 역량을 극대화하는 작업 없이 단순히 물건만 갖고 시장에 나가 이와 같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개발시대의 사고가 잘못됐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개발주의 시대의 대표적 사고는 획일화, 표준화, 대량화, 자동화다. 사람마다 태어나는 환경과 문화가 다르고 입맛과 몸이 느끼는 감각이 다른데 정부가 관여해 조리법을 통일하거나 특정 음식을 홍보하고 일류 한식당을 표준화하려 했으니 성공할리 만무하다.

궁중음식이 우수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극소수만이 궁중음식을 즐겼을 뿐이다. 궁중음식 우월주의에 빠져 궁중음식을 한식 대표로 내세웠으니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우리 한식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하다. 그런데 특정음식으로 획일화하려 했으니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세계의 한식에 대한 소비자는 조선시대의 왕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다.

저성장시대의 일본 장수기업이 어떻게 지속성장에 성공했는지를 나타내는 최근 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354년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기업 다쓰우마혼케(辰馬本家)는 일본 10대 사케 주조기업 중 하나다. 이곳에서 만드는 사케 하쿠시카(白鹿)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쓰우마혼케도 한때 성장 한계에 부딪혀 2009년 16대 사장에 오른 다쓰우마 겐지(辰馬健仁)는 과감하게 성장 전략을 바꿨다. 더 좋은 술을 만드는 대신 사케를 일식과 함께 세련되고 멋스럽게 마시는 술 문화를 보급하는데 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적 가치발굴로 지속성장에 성공한 다쓰우마 사장은 “일본 전통주는 일식과 함께 세계시장에 진출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며 “음식과 술 자체의 맛과 풍류를 유지하고 세계 누구에게라도 권할만한 술 문화와 식문화를 만들어야 세계인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말했다’(중앙일보 2016. 3. 16).

우리의 문화적 가치는 우리만이 갖고 있는 가치의 보고인 농경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한식의 세계화 사업도 이러한 가치의 발견과 창출산업이 선행돼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도 식품산업 발전에 개발주의자의 사고가 아직 지배하고 있다.

하루빨리 사고를 바꿔 한식이 세계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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