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전문학 속 고품격 음식
우리 고전문학 속 고품격 음식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6.04.2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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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 전주대 객원교수·(전)전주대 문화관광대학장

‘(전략)…어허 둥둥 내 사랑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 봉지 떼투리고 강릉 백청을 따르르 따러 씨난 발라 버리고 붉은 점만 가려 그것을 니가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어. 어허둥둥 내 사랑이야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능금을 주랴 포도를 주랴 뒷동산 올라가 시금 털털 개살구, 작은 이도령 서는디 니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어 그러면 무엇을 먹으랴느냐. 소 잡어주랴. 돗 잡어주랴. 양을 잡아주랴 닭을 잡어주랴.(후략)’(동초제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전북도립 국악원 국악표본교재, 2012)

사랑가에서 몽룡이 춘향에게 수박, 능금, 포도, 개살구 등 과일과 소, 돼지 등 고기를 권하다가 거절당하는 대목인데 그 중 수박은 붉은 과육에 강릉 백청(白淸: 흰색 고품질 꿀)을 발라서 먹으라고 권하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당시 조선조 상류층에서는 수박 과육에 꿀을 발라 시원 달달하게 즐겼으며 강릉 꿀을 최고로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추 120여 종이상의 춘향전 판본 중 가장 충실하다는 ‘남원고사(南原古詞)’에는 퇴기 월매가 춘향과 이몽룡의 부부 연을 허락하고 차려낸 주안상에는 신선로와 찜, 구이, 볶음, 마른 찬, 떡, 조과, 과실 등 31가지의 음식에 12종의 술이 등장한다. 그리고 통영소반, 안성유기, 왜화기, 당화기 등 당대의 명품 집기 그릇들이 망라됐는데 당시 양반집 상이 7첩, 임금님 수라상이 12첩 반상이었음을 고려하면 비록 상류층 이야기지만 우리 조상의 음식문화가 만만찮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최근 출간된 <옥루몽玉樓夢>(洪曠善 역, 2013) 역시 조상의 음식문화를 짐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제1회인 ‘다섯 선관들 인간세상과의 인연’(3쪽~10쪽)의 경우 천상계의 옥황상제가 신선들을 불러 베푼 백옥루 낙성연에서 주인공격인 문창성군(文昌星君)에게 시를 지으라고 분부할 때 유리 술잔에 가득 따라 준 것이 유하주(流霞酒: 신선의 술). 그리고 그가 술에 취할까 염려한 상제가 선녀인 제방옥녀(帝傍玉女) 편으로 준 것이 선도(仙桃: 신선나라의 복숭아) 여섯 개와 옥액(玉液: 마시면 오래 산다는 물약) 한 병이었다. 마고선자(麻姑仙子: 여장남자)가 마노(瑪瑙: 혼합광물) 항아리에 담아 제방옥녀에게 보낸 천일주(千日酒: 담근 지 1천일 술)와 관음보살이 석가에게 팔진미(八珍味: 진귀한 음식 8개)를 먹어야 메밥의 담박함을 안 다고 말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하지만 <옥루몽> 음식 이야기로는 제45회 ‘연왕 가족들 봄맞이’(528~539쪽)가 압권이다.

먼저 물고기 회 요리 이야기. 연왕 가족의 봄맞이 꽃놀이 연회에서 ‘진미 한 접시로 요리 맛을 보여 달라’는 요청에 소실부인 선숙인의 종 소청이 백옥쟁반에 올린 실처럼 가늘게 썬 농어회 한 접시로 감동받은 연왕이 ‘은설회(銀雪膾)는 맛이 좋기도 하지만 송강의 농어와 병주의 연엽도(蓮葉刀)가 아니면 요리를 할 수 없단다’며 선숙인의 요리솜씨를 칭찬했다. 연왕의 선숙인 칭찬에 샐쭉 질투심과 함께 화가 난 다른 소실부인 홍난성(紅鸞星)은 자신의 종 연옥에게 준비한 떡을 가져오라고 했다. 연옥은 얼른 푸른 빛 접시를 올렸는데 그게 바로 연자병(蓮子餠) 떡. 청강석에 연잎을 그려 넣은 접시 안에는 백 여송이 연꽃 모양의 떡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떡 한 개 한 개가 모두 꽃송이로 착각될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워 뭐라 형언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떡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물음에는 난성으로부터 “연밥을 곱게 가루 내어 설탕물로 걸러내고 석류 달인 물로 반죽한 다음 무수히 두드려 연잎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백 단향 나무로 불을 때 쩌 내게 되는데 만약 잘못되면 열 개중에 하나도 건지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 왔다.

그날 고품위 명품 떡 연자병은 연왕은 물론 좌중의 모든 사람들과 종들에게도 골고루 나눴으니 연왕 가족들의 마음씀씀이도 연자병 만큼이나 아름답고 넉넉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인데 우리 고전문학 속의 음식 이야기는 이처럼 격조 높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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