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주 업체가 필요한 이유
지역 소주 업체가 필요한 이유
  • 이원배 기자
  • 승인 2017.02.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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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류 산업은 주세법에 의해 여러 규제를 받는다. 술의 종류와 성분, 알코올도수, 생산 설비의 기준, 가격, 세율, 판매 방식, 광고 등 거의 모든 과정에서 규제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소주 산업에서 특이한 규제 중 하나가 ‘자도주 의무구매’ 제도였다.

지난 1973년 정부가 소주 시장의 과열 경쟁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도입해 주요 시?도별로 1개의 소주 업체에게만 생산권을 주고 생산량의 50%를 반드시 해당 시도에서 소비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당시 250곳이 넘는 업체는 11곳으로 크게 줄었고 자도주로 불리는 지역 대표 소주가 생겼다.

당시 수도권의 진로, 광주·전남의 보해양조, 부산 대선주조, 대구·경북 금복주, 울산·경남 무학, 충남 선양, 충북 백학, 강원 경월, 전북 보배, 제주의 한라산 등이다. 이 회사들 중 일부는 현재도 지역의 대표 소주 업체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 충북의 백학, 전북의 보배, 강원의 경월 등은 대기업에 인수돼 지역의 색깔을 잃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1996년 자도주 제도에 대해 ‘자유경쟁원칙에 위배된다’고 판결하면서 이 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20년이 넘게 안전한 제도의 방패막 속에서 지역 소주의 맹주로 자리잡은 자도주의 인기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여기에 ‘향토기업’이라는 애향심을 업은 마케팅으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애향심 마케팅이 언제나 유효하거나 지속되지는 않았다. 자도주 제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젊은 소비자일수록 지역 소주에 대한 ‘충성심’은 엷어졌다. 서울에 본사를 둔 대기업의 막강한 마케팅과 영업력은 조금씩 젊은 소비자에게 파고들었다.

더 이상 지역 업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해 주지 않게 됐다. 오히려 ‘참이슬’과 ‘처음처럼’을 마시는 게 젊고 세련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지역 소주를 외면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광주·전남을 지역 기반으로 하는 보해양조의 흔들리는 입지는 단적인 모습이다. 한때 90%에 육박했던 지역 점유율은 최근 절반선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참이슬을 앞세운 하이트진로의 공격적인 영업이 성공을 거두며 시장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소주 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참이슬의 지난해 매출은 1조 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경쟁 업체의 점유율을 뺏어서 가능했다.

앞으로 하이트진로의 지역 소주 시장 공략은 더 거세질 것이다. 맥주 사업의 손실을 소주 사업이 메워야하기 때문이다. 막강한 자본력과 영업력을 갖춘 대기업의 공격적 마케팅에 지역 업체는 속수무책이다.

소비 트렌드도 대기업 편을 들어줄 확률이 높아 보인다. 전국이 하루 생활권에 접어든지 오래로 지역색이 엷어졌다. 애향심 마케팅의 유효기간도 그리 오래남지 않은 걸로 보인다. R&D와 마케팅 모두 열세다.

그럼에도 지역 소주 업체는 살아남아야 한다. 과거 자도주 제도 덕에 쉽게 성장했지만 현재 소주 시장의 다양성을 지키고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더 나은 제품을 제공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지역 소주의 몰락으로 시장이 과점화되면 대기업의 횡포에 휘둘릴 확률이 높아진다. 독과점 체제는 따로 예를 들지 않아도 그 폐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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