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식기-그릇의 문화정치학

식품외식경제l승인2017.09.11l9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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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강사

이번 정권이 시작하면서 바로 관심을 끈 사진 한 장은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대통령과 참모진의 모습이었다. 이들이 여느 직장인과 같이 일회용 컵 커피를 들고 걷는 모습은 탈권위적이고 성실한 정권의 이미지를 충분히 전달했다.

이후 또 한 번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언론이 공개됐다. 실내에서 서서 마시면서 컵받침까지 갖춰야 하는 전형적인 도자기 커피 잔이라 몇몇 사람들은 머그컵을 사서 청와대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 커피 잔은 넓은 초록색 띠 위에 금색의 십장생이 그려진 흰색 잔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 디자인한 커피 잔이다.

청와대에서 처음으로 식기를 주문제작한 때는 1973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이다. 당시 영부인은 귀빈 접대에 일본 도자회사 ‘노리다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한국도자기에 식기 제작을 의뢰했다.

이때 디자인에 육영수 여사가 관여했다고 하고 특이하게 군인 식판 같은 것도 제작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도 한다. 중요한 점은 이때를 계기로 한국은 본차이나 기술을 도자산업에 도입한 것이다.

도자기는 조선시대 첨단 기술 산업이었다. 흙과 불과 물이 만나 만들어진 강도가 높고 방수가 완벽한 그릇은 예술적으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저가의 재료를 이용해 최고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의 결과물이다.

도자기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은 흙 속 규소가 완전히 녹아 강도와 방수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약 1250도 녹는 온도까지 갈 수 있는 도자가마를 만들고 도자기를 구워내는 일은 기술력이 필수적이다. 임진왜란 전까지 중국과 조선만이 획득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도자사(陶瓷史)에서 조선시대에서 백자를 민간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한 사치 금지령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중국의 도자기를 사기 위해 먼 뱃길을 마디하지 않고 찾아왔고 중국의 명·청 교체기에 중국의 도자기를 사기 어렵게 되자 새로운 도자기 구매처를 찾아 한국과 일본으로 왔다.

한국은 왕실의 관요에서만 좋은 도자기를 제작해 그 양이 많지 않았고 일본은 임진왜란 때 한국에서 데려간 도공으로 도자 기술을 향상시키고 산업화시켜놓은 상태였다. 유럽 상인들은 일본에서 중국 도자기를 대신해서 구매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계 무대에 한국 도자기를 알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또 도자기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실패해 조선시대 말기부터 일본의 저렴한 도자기가 한국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청와대의 도자 식기 주문 제작은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절약을 내세우며 칼국수 점심을 먹고 도자기는 전대 대통령 식기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시 공식식기 주문 제작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그대로 쓰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도자기를 그대로 사용한 일이 당대 정치철학을 반영한 것이었지만 이후는 관행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매 정권마다 새로운 그릇을 제작하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고 문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조선의 도자기를 생각하면 무조건 사치 금지, 검박함만이 옳은 판단은 아닐 것이다.

노태우 정권이 시작한 해가 1988년이니 올해 꼭 30년이 지났다. 지금 청와대 공식식기를 사용한지도 한 세대가 지났다. 우리나라의 디자인 산업이 그동안 급격히 성장하였으나 아쉽게도 도자산업은 쇠락하고 있다.

한국 음식문화가 단지 음식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상에, 의미가 담긴 그릇에 담아 격식 있게 먹어야 한다. 더불어 청와대의 식기는 시대를 담고 정치철학을 반영해야 하는 매개체이다. 일회용 컵도 시대를 담아낸 문화적 코드로 탈권위적인 정권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젠 정치철학을 담으며 한국의 산업에도 자극을 주고, 한식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청와대 식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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