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치킨 가격 프레임에 기댄 닭고기 공시제
언론의 치킨 가격 프레임에 기댄 닭고기 공시제
  • 이원배 기자
  • 승인 2017.09.18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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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산지, 도매 가격 등을 공개해 유통 투명화로 치킨 가격을 잡겠다며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한 ‘닭고기 공시’ 제도가 시행 약 20일이 지났다. 1일 닭고기 공시제도가 처음 시행되던 날 아니나 다를까 언론의 진부한 치킨 프레임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대다수 매체들이 ‘생닭 가격 2천 원대, 치킨값은 2만 원 육박’의 프레임을 가동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육계가격을 ‘치킨 원가’로 단정하는 매체도 부지기수였다. 치킨 가격 프레임은 단편적으로 보면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나 매장이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론이 짜놓은 프레임에 딱 갇히게 되는 셈이다. 소비자는 치킨 가격에는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며 언론의 프레임에 그대로 말려든다.

이같은 언론의 치킨 가격 프레임은 사실에 기반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 닭고기 가격 공시(도매가격 기준)를 보면 1일 2668원에서 등락을 거듭해 13일 현재 2438원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치킨 가격은 인상이 불발됐지만 대체로 1만5천 원 안팎에 2만 원에 가까운 메뉴도 있는 건 사실이다. 2천 원짜리 생닭이 2만 원짜리 치킨이 됐다는 단순한 도식의 프레임에 소비자들은 업체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해도 휘발유와 원재료인 원유를 놓고 가격을 단순 비교하는 경우는 드물다. 정제와 유통 과정 속에 세금과 비용, 마진 등이 포함된 걸 알기 때문이다.

치킨도 마찬가지다. 원재료인 육계에 염지를 하고 포장, 유통을 거쳐 튀김옷과 튀김기름, 파우더, 소스, 치킨무, 음료수, 조리비용, 배달수수료, 임대료, 인건비, 마케팅비, 마진 등이 붙어 가격이 매겨진다. 임대료와 식재비는 계속 상승하지만 가격 인상은 녹록치 않다.

치킨 업소 점주들이 하는 일은 마른 수건 짜내듯 비용을 절감하는 일이다. 잠을 줄여 더 늦게까지 일하고 더 일찍 문을 연다. 배달 거리를 늘리고 더 친절한 서비스를 위한 감정노동도 마다할 수 없다.

선택지 많은 소비자는 사소한 불친절에도 바로 발길을 끊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새벽녘에는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된다. 그래도 가격이 비싸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점주와 1시간만이라도 얘기를 나눠보라고 하고 싶다.

얼마 전 취재를 위해 경북의 한 치킨 프랜차이즈 점주를 만났다. 그 점주는 치열한 경쟁도, 임대료도 아닌 언론의 보도 행태가 장사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의 벌떼식 보도로 매출이 널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치킨이 친근한 국민 간식이어서 그런지 유독 치킨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언론이 일제히 부정적으로 보도하면 매출이 금방 영향을 받는다. 족발도 즐겨 먹지만 누가 가격에 신경 쓰냐. 우리 사정은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비싸고 폭리를 취하는 것 같이 보도하는 행태는 큰 문제”라고 성토했다. 이 점주는 당장이라도 가격 인상에 나서야 하지만 올 봄 가격 인상 논란을 지켜보면서 최소 2~3년은 가격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며 한숨지었다.

농식품부도 육계 가격과 치킨 값의 상관 관계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올 초 AI 부실 대책으로 가격 인상에 대한 역풍을 맞을까 두려워 한 번 쓴 치킨 가격 인상 억제 카드의 효과를 봐서인지 닭고기 공시제도까지 시행하고 있다. 언론의 프레임에 정확하게 기댄 이번 제도로 가격 인상 억제 효과는 톡톡히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일선 자영업자의 경쟁과 고된 노동은 더 심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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