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음’과 ‘차림’에 스민 존중의 음식문화
‘담음’과 ‘차림’에 스민 존중의 음식문화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8.01.2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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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강사

매일매일 매스미디어에는 먹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지방 명물 소개, 맛집 기행에서 요리 경연, 그리고 맛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까지 음식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많고 다양하다.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걸 먹는 것만이 우리의 음식문화일까 생각해 본다.

나가사키짬뽕을 먹으러 일본의 오래된 식당을 간 적이 있었다. 솔직히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보다 맛은 없었다. 아마 한국에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서 그랬겠다 싶었다. 그런데 식사 후 바로 앞 건물의 역사관에 가보니 1899년 시작한 나가사키짬뽕의 역사와 사용했던 도자기 그릇, 옛 메뉴판, 사진 등이 전시돼 있는 걸 보니 ‘아, 내가 역사의 현장에 와서 그 음식을 먹었구나’ 실감했다. 역사가 담긴 현장에 와서 그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지 한 끼 식사를?넘어서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한편 한국에서 오래된 몇몇 음식점으로 과거에 사용했던 유물 조사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제대로 남아 있는 유물을 찾질 못했다. 일본의 나가사키짬뽕집 만큼 바랐던 건 아니지만 ‘어쩜 이럴 수 있나’ 싶게 그릇 하나, 숟가락 하나, 국수틀 하나 제대로 남아있지 않았다. 그런데 창업주나 그 후손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해도 된다.

창업할 때 자리 잡았던 터가 도시개발로 헐리고 어쩔 수 없이 이전을 하면서, 또는 88서울올림픽 때 외국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정부가 건축을 새로 하라고 해서 새 건물을 짓고 원래 건물은 허물어 주차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유물 보존이 안 된 것은 주인의 인식부족과 함께 정부의 개발 위주 정책이 한몫을 한 듯 했다. 결국 100년이 됐다고 하는 설렁탕집에서 설렁탕만 먹고, 50년이 넘는 냉면집에서 냉면만 먹고 나왔다. 물론 맛있었다. 그러나 너무 아쉬웠다.

일상의 상차림도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한국의 전통적인 상차림은 소반에 차린 일인상이었다. 그 지역의 솜씨 좋은 장인이 뚝딱뚝딱 나무 상태에 맞게 제각각 만들었던 소반 위에 밥은 앞의 왼쪽에, 국은 오른쪽에, 김치는 뒤쪽에, 장 종지는 가운데 놓고 반찬을 차리고 수저는 상을 받는 사람의 오른쪽 앞에 가로로 놓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식탁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먹으니 수저가 각자의 앞에 세로로 놓이게 되고 반찬 놓는 위치도 그에 맞게 바뀌었다.

그러나 최근 전통 소반에 상을 차린다고 할 때도 간혹 수저 놓는 방향이 틀린 경우도 보이고, 반찬 놓는 위치도 어수선하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상을 차릴 때 자연스럽게 배웠던 상차림의 문화가 이제는 습득해야할 지식이 돼 가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생활 개선을 다룬 책에서 상차림의 형식을 복잡하다고 지적한 걸 읽었다. 식민지의 그림자가 길게 느껴진다.

문화는 언제나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에 여러 사람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할 때 수저를 세로로 놓고 반찬 위치도 일인상과는 달리 바뀌어야 하고 또 과거보다 밥의 양도 줄어 밥그릇 크기도 작아졌다. 유통이 발달하면서 여러 지역의 음식을 쉽게 맛보고 다른 나라의 음식도 쉽게 즐기고 있다.

이제 음식문화를 이야기할 때 단지 음식뿐이 아니라 ‘담음’과 ‘차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닌가 싶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일상의 한 끼 상차림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나에 대한 존중이고 너에 대한 존중이다.

2018년에는 먹방을 넘어 담음과 차림도 함께 이야기하고, 일상에서 음식문화의 맛과 멋을 즐기길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에 맞는 아름다운 상차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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