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가 된 냉장고
문화재가 된 냉장고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8.03.0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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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정희정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강사

문화재하면 오래되고 멋진 어떤 것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데 신문 지상에서 한 번씩 자동차 포니라던지 만화 고바우 영감이 문화재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될 때가 있다.

등록문화재이다. 개화기부터 6·25전쟁 전후의 기간에 만들어진 건물이나 예술품, 생활용품 가운데 가치가 크거나 때로는 보존이 시급할 경우 지정하는 문화재이다. 초기에는 근대 건물들이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의미가 있음에도 도시 개발이나 사용자의 필요 때문에, 때로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감정적 거부로 부서졌기 때문에 주로 근대 건물이 지정되었다. 건물에 대한 조사와 문화재 지정 후 여러 가지 근대 유산에 대해 조사해 우리의 현대 생활과 관계된 많은 물품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기 시작했다.

2013년에 작은 냉장고 하나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65년에 처음으로 제조한 국산냉장고이다. 문도 하나이고 높이도 50cm 정도라 지금 우리 눈에는 너무 초라해 도저히 문화재감으로 보이지 않는다. 문화재라 하면 고려시대 상감청자나 조선시대 숭례문 정도는 되어야 할 거 같다. 그러나 이 작은 냉장고가 갖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는 국보에 뒤지지 않는다.

자연의 얼음을 활용한 냉장 시설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액체의 기화 현상을 이용한 냉매 원리를 발견하고 냉장고라는 인공물을 만들어 낸 것은 19세기 전후의 유럽이었다. 오랜 시간 냉매의 재료 실험을 지나, 냉장고가 가정용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때는 20세기 초였다.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대중적으로 일반인들에게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때가 1927년 GE 냉장고라고 한다. 그리고 당시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던 냉장고 금액을 나눠서 낼 수 있도록 금융제도, 즉 할부가 뒷받침되면서 더욱더 많은 가정에서 냉장고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에도 외국의 냉장고가 들어와 사용된 기록이 있고, 해방 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냉장고가 가정집으로 흘러들어갔다.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냉동기를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구조를 익히고, 부품을 자체 개발해 제조에 성공한 국산 냉장고가 등록문화재 제560호로 지정된 것이다. 국산냉장고가 일반가정에 퍼지면서 우리의 식생활이 변하고 생활이 변했다. 오늘날에는 김치냉장고까지 만들어 1년 내내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냉장고는 IT기술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50여 년 전 국내 냉장고의 생산 성공은 전자제품의 국내생산, 에어컨 등 냉장산업의 발판이 되어 문화재가 되었다. 그런데 냉장고는 이런 산업적 측면 뿐 아니라 음식문화에도 매우 중요하다. 계절과 무관하게 다양한 식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되었고 과일과 채소 보관을 도와 비타민 등 영양소 결핍 문제 해결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지금 우리의 식생활에 크게 영향을 끼친 물품은 또 뭐가 있을까? 전기밥솥이 아닐까 싶다.

밥 짓는 일은 매일 반복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기밥솥이 절약해준 인간의 에너지와 시간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 최초의 국산 전기밥솥은 발견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국산 전기밥솥을 제조한 것으로 알려진 회사에도 제대로 자료가 없어 어렴풋이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로 전할 뿐이다.    

문화는 오래 전 역사 속 궁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일상 속 작은 행동 속에 이다. 문화재에 대해, 근대 문화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리고 오래된 부엌에 방치된 전기밥솥은 없는지, 혹시나 최초의 국산 전기밥솥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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