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은행을 출입하고 있던 필자는 모 은행 본점 영업부장을 찾아갔다. 여차저차해서 800만 원 대출을 좀 해야겠는데 해줄 수 있겠냐고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단칸방에 깔려 있는 보증금이 400만 원이었는데 방 2칸에 부엌까지 딸린 집으로 이사를 가자니 800만원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업부장은 대뜸 나에게 “김 기자, 그러지 말고 이 참에 집을 사지”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금 16평정도 중고 아파트의 시세가 3천만 원 안팎인데 김 기자 신용 믿고 내가 3천만 원까지 대출해줄테니까 아예 집을 사”라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800만 원 대출도 어렵게 생각하고 말을 꺼낸 사람에게 3천만 원을 빌려주겠다며 집을 사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내 월급 수준으로는 그 돈을 갚아나갈 자신이 없고, 또 형님도 아직 집 없이 살고 있는데 내가 빚을 내서 집을 산다는 것은 도의적으로 말이 안 된다”면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영업부장은 잘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난 결국 800만 원만 대출을 해서 꿈에도 그리던 두 칸짜리 방을 마련해 이사를 했다.
그 후 대구의 아파트 가격은 폭등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88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에서는 이미 부동산투기가 횡행하고 있었고, 그 여파가 지방에까지 미칠 것이라는 은행 영업부장의 혜안(?)을 재테크에는 문외한이었던 나는 알 리가 없었다. 90년 서울로 와서 기자생활을 계속하면서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월급쟁이 생활을 해서는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식투자에 손을 댔다가 IMF로 인해 그나마 착실히 번 돈을 모두 까먹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내 집이 없다.
지난여름에는 ‘바다이야기’로 난리를 치더니만 요즘은 온 나라가 집값 폭등으로 야단법석이다. 나처럼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 무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이 무려 100채가 넘는 사람이 전국에 37명이나 된다고 하니 같은 하늘 밑에 살면서도 어찌 이리 딴 세상에 살고 있는 기분일까. 자고나면 한쪽에서는 ‘억’ 소리가 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악’ 소리가 나고 있다. ‘그 때 집을 사야했는데’ 하는 후회와 ‘옮기고 나니 폭등 했어’ 하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그래서 모두 제 정신이 아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마치 겉은 멀쩡한데 속은 푸석푸석한 바람 든 무와 같은 느낌이다. 경제적 용어로 말하자면 ‘가수요’와 ‘거품’ 투성이다.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모두 술에 취한 사람처럼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고 있다. 한마디로 ‘바람 든 사회’요 ‘술 취한 공화국’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진 자를 욕하거나 탓하는 것도 죄악이지만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 후회와 탄식을 자아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 그래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술을 마신 사람처럼 혼돈에 빠져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더 큰 사회적 죄악을 생성해낼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더 큰 죄악이 현실화 되느냐 여부는 오늘도 그저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언젠가는 풀릴 날이 있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성실하고 착실하지만 무능한 사람들에게 ‘바람 든 한국사회’와 ‘술 취한 대한민국’이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주느냐의 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길 희망하면서 나는 상상 속에서나마 원하는 재미와 꿈과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손오공의 주문을 외우고 싶다.
“우랑보리 나바롱, 부따라까 따라마까 뿌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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