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와 블레어의 상생 리더십
 만델라와 블레어의 상생 리더십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9.11.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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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 우양재단 이사장|(전)전주대 교수

 ‘대한민국 국민의 올여름은 뻐적지근한 목덜미와 심신의 찌부둥함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한일 정상 간의 감정적 전투적 대결국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식외경 2019. 8. 5) ‘요즘 우리 국민들의 안색이 매우 어둡다. 잿빛이다. 우울하고 아슬아슬하다.’(식외경 2019. 9. 23)

위의 두 예문은 모두 필자의 월요논단 올 기고문의 머릿글(Introduction)이다. 한결같이 썰렁하고 답답하다. 두 예문 외의 올해 기고문이 거의 다 그렇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름의 불편한 마음을 곧이곧대로 피력하되 위 두 마디 글로 갈음하고 한일외교 현안 해결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집중, 한 몫 거들어 보고자 한다. 

먼저 조선조 전기의 서장관書狀官출신 외교전문가로서 영의정을 지낸 신숙주(1417~1475) 가 성종께 한 충언을 곱씹어 볼 만하다. ‘원컨 대 일본과 실화失和하지 마소서願國家母與日本失和’(유성룡 징비록 제1권, 이재호역 20쪽, 2007. 역사의 아침)

그리고 배우고 싶은 사례를 한 가지 더 소개한다. 넬슨 만델라(1918~2013) 남아공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1953~ )영국 총리의 상생 리더십이다. 2001년 넬슨 제독 기념탑으로 잘 알려진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 스퀘어. 2만 명 관중들 앞에서 펼쳐진 남아프리카 공화국 자유 선거 7주년 기념 ‘사우스 아프리카 프리덤 데이 콘서트’는 스파이스 걸스 멤버였던 멜라니B를 비롯해 코어스, R. E. M, 아토믹 키튼 등 영국과 남아공 출신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화려한 라이브 무대였다.

하지만 그날의 진짜 주인공은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 두 영웅의 연설과 행동에서 읽을 수 있는 존중과 사랑의 상생 리더십은 매우 감동이었다. 백인 우월주의를 뿌리로 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남아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 철폐를 위한 오랜 투쟁과 협상으로 총선거(1994)에서 최초의 비백인非白人대통령에 뽑혀 종신대통령을 마다하고 5년간 국정에 전념했던 만델라와 그 국민을 위한 영국 정부와 국민의 헌정 무대라고 볼 수 있었다.

먼저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오프닝 축사. “오늘 우리는 남아프리카의 자유, 아파르트헤이트에서 해방된 날을 기리기 위해 모였습니다. 만델라 당신을 축하하려고 모였습니다. 자유를 위해 시위하고, 저항하고, 노래했던 사람들의 희망을 기리려 모였습니다. 넬슨 만델라, 당신은 이 세계에서 최고가치를, 그리고 21세기를 대표합니다”

다음은 만델라의 답사연설. “저는 저희와 함께 자유를 향한 여로에 오른 영국인 여러분과 이 자리를 함께해서 행복합니다. 저는 남아 해방에 가장 중요한 투쟁의 현장인 이 트라팔가르 스퀘어에 서게 돼 행복합니다. 제 시선은 많은 친구들이 살고 있는, 불가분의 연대를 맺은 영국을 바라봅니다.

영국과 남아프리카는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서야 합니다. 우리는 후손에게 밝은 미래를 물려줘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함께 창조해야 합니다.” 무대 입장과 퇴장 시 전직 남아공 대통령 83세 만델라의 겨드랑이를 끼고 두 손을 꼭 잡고 부축하는 48세 젊은 현직총리 블레어의 아름다운 모습만으로도 모든 인류의 가슴은 충분히 촉촉이 젖었으리라. 

그날의 만델라와 블레어는 옛 지배국과 피지배국 영수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상호존중과 배려, 사랑으로 세계질서에 벅찬 감동을 안겨준 상생 리더십의 주인공들이었다. 두 사람의 그날 모습은 대한민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의 모습으로 편집해놓고 싶을 만큼 멋지고 당당했다. 표준 시차 한 시간, 멀리 떨어진 영국과 남아공이 이럴진대 같은 표준 시차의 가장 가까운 대한민국과 일본은? 게다가 미국과 함께 공고한 자유민주주의 동맹국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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