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만두, 그 맛이 그리워질 때
[오피니언]만두, 그 맛이 그리워질 때
  • 김철원 한국방송대 관광학과 교수, 외식테라피연구소장
  • 승인 2024.02.16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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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에서 2월은 왠지 더 어수선하고 눈 깜작할 사이에 지나는 것 같다. 다른 달보다 날수가 이삼일 정도 작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회적으로 많은 행사가 몰려 있는 시기라서 마음이 더 바쁜 듯하다. 계절적으로도 봄을 앞두고 마음은 이미 따뜻함을 맞이한 것 같지만, 혹독한 꽃샘추위가 한겨울 동장군보다 더 매서워 나도 모르게 몸을 바짝 움츠리게 되니 마음마저 어수선해지는 것 같다.

기업에서는 인사이동으로, 학교에서는 졸업과 입학으로 어수선하다. 이미 1월 1일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실컷 나눴건만 정작 음력으로 설날을 맞이해야 비로소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완연한 느낌이 나는 것은 단지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민족의 대명절, 설날을 지내면서 서로 간의 만복을 기원하고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려는 마음은 누구나 한결같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2월에는 부쩍 모임도 잦고 음식을 나누는 일도 더 자주 있게 된다. 2월에는 과연 어떤 음식이 잘 어울릴까.

어린 시절 기억으로 매섭게 춥고 설 명절이 다가오는 이즈음에 김장 김치를 듬뿍 썰어 만든 만두를 자주 해 먹었다. 그때만 해도 보통 3대(代)가 한집에 모여 사는 게 일반적이서 만두를 해 먹으려면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우선 만두소를 만드는 일부터 손이 많이 간다. 김치를 비롯해서 다양한 재료를 다져 넣는데 모든 재료의 물기를 손으로 꼭 짜내야 했다. 웬만한 아기가 목욕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광주리에 만두소를 만들어 놓고 만두피를 준비한다.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도마 위에서 일일이 홍두깨로 밀어 만든다. 만두소와 만두피를 만드는 일은 전부 어머니 차지였다. 만두를 빚는 일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누가 더 예쁘게 빚는지 경쟁하고, 할머니는 손주에게 만두 빚는 법을 전수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빚다 보면 어느새 만두소가 바닥나고 끓는 물에 만두가 들어간다. 잘 익은 만두를 온 가족이 둘러앉아 나눠 먹으며 이게 내가 빚은 건가, 저게 내가 빚은 건가, 서로 찾아보며 먹는 재미가 만두 맛을 더해 준다.

어떤 음식이든지 사람 손이 많이 가면 갈수록 그 맛이 더 깊어진다.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음식문화에는 고유한 ‘손맛’이 존재한다. 손맛은 곧 정성이다. 식재료가 풍족하지 못했지만 거친 식재료를 오로지 손끝으로 다듬어 궁극의 맛을 내는 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손맛이었다. 손만두와 손칼국수처럼 우리 마음마저 달래주던 음식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손이 많이 가는 만큼 노동의 강도가 높아서 상업적으로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고, 가정에서도 편의성을 추구하는 사회 풍조로 인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편의성 일색인 사회에서 냉동실에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전자레인지에 쉽게 데워 먹을 수 있는 냉동만두에 밀려 그나마 명절에조차도 맛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음식은 생명을 유지하게 해 주는 생태적 기능이 우선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음식은 ‘사회적 기능’으로 으뜸의 역할을 한다. 만들면서 함께하고 먹으면서 함께하는 음식은 만두가 으뜸이다. 모든 복을 담아낸 만두는 지나간 것을 정리하는 의미도 담았고 만두를 나눠 먹으면서 복을 나누고 만두 속을 열면서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의미도 담았다. 누군가와 함께 만두를 빚어본 경험이 없다면 외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언제 어디서나 만두를 먹기 편리한 세상이 됐지만 혼자 먹는 만두는 그 의미를 알고 보면 뒷맛이 쓸쓸하다. 이번 2월에는 누군가와 같이 만두를 만들어 먹어보자. 만들기 어렵다면 특별한 모임에 손만두 전문점을 찾아 ‘만두전골’이라도 함께 나눠 먹는 따뜻한 순간을 맞이해 보자. 손만두를 빚어준 주인장에게 감사 인사도 나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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