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다시 생각하는 세월의 의미
<월요논단> 다시 생각하는 세월의 의미
  • 관리자
  • 승인 2012.03.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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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얼마 전 국민의 애도 속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신 법정 스님이 생전에 남긴 말에 이런 것이 생각이 난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또 한 해가 가는 가보다.

중년을 넘어서는 나이에 그동안 나름대로 인생을 치열하고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아오던 사람들이 조금씩 자신이 닦아놓은 기반이나 활동이 약해지고 흔들리는 것은 내가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세월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맡고 있던 업무가 나이가 들면서 덜 중요한 자리로 옮기게 되면 내가 밀리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하고, 고분고분하던 아이가 언제부턴가는 아버지가 하는 말마다 대꾸를 놓치지 않는 것은 갑자기 버릇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세월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감기가 찾아와 이상하게 오래 머물고 있으면 지독한 독감에 걸린 것이 아니라 세월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월은 이유 없이 기별 없이 서서히 여러 가지를 바꾸어 놓게 되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아직 직장에서 건재할 나이에 퇴직의 압력을 받고 있다면 내가 모르는 억울한 내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쯤은 나에게도 세월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즘 들어 공연히 자신에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세월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해오던 외식사업에서도 단골이 줄고 배달주문이 줄어들고 매출이 감소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역시 세월이 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구에게도 결코 관대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결코 특혜가 없는 이 무정한 세월 앞에서 그저 겸손하고 그저 받아들이며, 남아있는 시간, 남아있는 기회에 감사하며, 세월조차도 앗아갈 수 없는 영성의 가치를 찾아 새로운 여정을 떠나야 하겠다.

베이비 부머들에게 오늘의 시간은 너무도 야속하고 속절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되짚어 보면 어느 세대보다도 긴 영혼의 삶을 현실에서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만난 친구는 이미 십 수년 전에 고향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호연지기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전해왔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모두 같은 가족병력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보니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정부의 고위직을 정리하고 낙향을 했다는 친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영혼의 시간을 사는 그런 맑은 표정과 겸허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대의 석학 이어령 교수가 이런 글을 썼다.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종교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영성의 세계도 세상 곳곳에서 내가 믿음을 가지면 계절이 불쑥불쑥 소리 없이 내 앞에 나타나듯이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성의 깨달음이 세월의 무정함에 묻혀 내게로 온다면 자칫 흘려보내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무언가 약해지고 무언가 자신이 떨어질수록 더욱 정신의 맑음과 고요함과 평온함을 유지해야 한다. 영성을 찾는 기회가 그런 가운데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월이 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 변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다면 예고 없이 찾아온, 너무도 아쉽게 찾아온 자신의 ‘은퇴 소식’이나 사업하던 친구의 폐업소식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영적인 성숙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는 이치가 참으로 무상할 때가 많다. 배가 고파 주릴 때는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면 당장이라도 다 먹어치우고 싶은 충동을 느끼다가도, 아주 머나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등에 지고 가야하는 무거운 식량은 때론 걷는 게 너무 힘들어 가다가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배워야 산다고 했고,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으며, 배워서 남 주나 라는 시쳇말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세상이 돌고 돌다 보니 많이 배운 것이 짐이 되고, 많이 배운 것이 업보가 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흔들고 있는 베이비 부머들의 문제는 너무 빠른 퇴직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일수록 또 학력이 높을수록 퇴직 후 새로운 제 2인생의 출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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