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우리 음식문화의 ‘건강’ 패러다임, 식치(食治)
[전문가칼럼]우리 음식문화의 ‘건강’ 패러다임, 식치(食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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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1.25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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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농심 R&BD 식문화연구팀 팀장
각 나라의 음식문화에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흐르고 있다. 그 나라에 살면서 깊게 경험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려운 그 맥락을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꼭꼭 짚어주지 않으면 관통하기 어려운 음식문화 속 맥락을 서로 풀어주면서 소통해야 한다.

2003년 여름, 한국 주재 대사 부인들을 대상으로 우리 음식문화 강의를 하며 ‘소반(小盤)’을 설명하였다. 서양의 그것과 달리 식당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면서, 음식물을 담아 옮기는 트레이(tray)로 사용하다 밥 먹을 장소에 놓으면 그 때부터 식탁으로 바뀌는 그 놀라운 변신에 대하여! 나무로 만든, 용도 모르던 그 이국의 물건에 숨겨진 깜짝 변신술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소통하는 순간이다.

최근 필자의 회사를 방문한 각 국의 식품회사 임직원들에게 농심식문화전문도서관에 비치된 고서 및 희귀서를 보여주며 설명하면 낯선 이국의 책자에 반응한다. 2008년부터 3년 여간 ‘고문헌 속 우리 음식문화 연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국수류, 음청류, 과즐류, 주류 등 우리 음식문화의 단초를 볼 수 있는 책들을 수집한 것이다. 이 속에 들어 있는 진주면, 오이면, 육면, 난면 등 우리 조상들이 즐겼던 국수들의 변화무쌍함을 알기나 한 듯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역시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살펴본다. 그들과는 다른 문화와 소통하는 즐거움이다.

이제 우리 음식문화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한식은 문화전반을 이끌어가는 핵심요소를 담고 있는 우리 ‘음식물’ 그 이상의 것이다. 우리가 우리 음식문화 속에 꼭꼭 감춰진 ‘건강’ 가치를 알고, 일상에서 향유하며, 그 가치에 대한 문화적 맥락을 풀어주고 짚어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음식이 담고 있는 ‘건강’ 가치는 어떤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풀어놓을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식치(食治)’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 동양에서 수천 년간 우리의 몸과 먹거리로 실천해온 동양건강이론의 패러다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보물처럼 쥐고 있다 물려준 우리의 정신유산이다.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테두리로서의 인식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로 패러다임(paradigm)은 정의된다. 동서양의 인식 체계는 서로 다르다. 서양인들은 ‘나무’를 동양인은 ‘숲’을 본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각 ‘부분’을 통해 ‘전체’를 파악하는 ‘분석적 사고’가 발달된 반면 동양인은 숲의 모습을 그대로 관조, ‘전체’의 연결성 속에서 ‘개체’를 파악하는 ‘전체적 사고’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인체-건강-음식을 바라보는 지식체계도 달랐다. 서양과 달리 동양건강이론에서는 인간을 해부, 분석하기보다 통일된 한 유기체로 파악, 주관적 증상을 중시, 자연물을 분석하지 않은 채 그 개성을 파악하여 사용, 두 가지 이상의 재료를 교묘히 배합하여 인체의 유해작용은 최소화하며 치료효과는 상승시키고, 인체 외적요인보다 내부의 자연치유력을 강화시키려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현재 우리는 ‘한식’의 ‘건강성’에 대해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가? 우리들 대부분은 ‘3대 영양소, 비타민과 무기질, 섬유소’ 등 서양건강 프레임 중심으로 소통하고 있다. 근대 이후 제도권에서 서양건강이론 중심으로 교육한 성과이다. 동양건강이론에 대한 교육은 부재했다. 우리 음식문화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다. 현재 우리 음식문화가 갖는 ‘건강’ 가치와 제대로 소통할 수도, 향유할 수 없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음식문화가 가지고 있는 ‘건강성’에 대한 맥락과 소통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동양에 수천 년간 흐르고 있는 식약동원(食藥同源) 속 ‘식치(食治)’ 전통의 재조명이 필요한 이유이다. 과연 우리의 식치 전통이 담고 있는 내재적 원리는 무엇인가? 우리 음식의 ‘건강’ 가치와 온전히 소통하기 위해서는 동양건강이론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해야 한다. 어떤 패러다임이 더 맞고 틀리냐의 문제도, 어떤 것이 더 정확하냐의 문제도 아니다. 문화 ‘다양성’의 문제이다. 음식이 한 나라의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식의 ‘건강’ 가치를 식약동원(食藥同源) 속 식치(食治) 패러다임으로 짚어주고 풀어주어, 경제위기로 꽁꽁 얼어붙은 세계가 ‘동서양 건강한 음식문화의 소통’을 통해 술술 풀리는 2013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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