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매운 고추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매운 고추들은 어디로 갔을까?
  • 식품외식경제
  • 승인 2019.07.3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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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맹진 백석예술대학교 관광학부 교수

올여름 중부지방은 장마가 늦는 바람에 더위도 늦게 시작했다.

이렇게 더운 날이면 우물에서 길러온 찬 물에 밥을 말아 먹던 시절이 떠오른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여름이면 찬물이 찰랑찰랑한 대접에 밥을 말고 된장에 풋고추면 더위도 반찬도 그만이었다.

고추를 된장에 찍어 와삭 베어 물면 이내 매운 향기가 코에 퍼지고 혀끝이 얼얼해지면서 머릿속은 별이 가득했다. 이마와 콧등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돋아날 때 찬물에 말은 밥을 연신 몇 숟갈 떠 넣으면 입안은 금세 시원해졌다.

주말농장에 심은 고추가 여름이면 반찬으로 한 몫을 한다. 근데 이상한 게 요새 먹는 고추는 맵지 않다. 모종 가게에서 파는 고추모종을 심으면 크고 기다란 고추가 열리는데 매운 느낌이 거의 없다.

아삭아삭하고 수분이 많아 식감은 좋아졌으나 어딘가 허전하다. 밭에서 햇볕을 받고 잘 익은 토마토는 7월이나 돼야 맛볼 수 있다. 오랫동안 익기를 기다려 수확한 토마토는 슈퍼마켓에서 산 토마토보다 더 맛있다.

하지만 이 토마토도 과육이 퍽퍽하다. 어릴 적 밭가에서 잘 익은 토마토를 따 한입 베어 물면 달큼 새큼한 맛에 흐르는 과즙을 주체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참외를 먹을 땐 꽃이 달렸던 배꼽부터 꼭지 쪽으로 옮겨가며 먹는다. 꼭지에 이르면 매우 강한 쓴 맛이 느껴졌던 기억 때문이다. 어쩌다 꼭지에 혀를 갖다 대봐도 쓴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참외가 왜 이리 단 맛이 강한지.

단 맛이 강하기로 치면 수박도 빼놓을 수 없다. 여름철 간식으로는 옥수수만한 것도 드물다. 들고 다니며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토실토실한 옥수수 알이 쫀득쫀득 씹힐 때 입 안에서부터 포만감이 가득하다. 이젠 옥수수마저 단 맛 나는 품종이 개발돼 상품으로 나왔다고 한다. 여름이 지나면 사과가 나온다. 벌써 입에 침이 고인다. 기억 속에 저장된 능금의 신 맛 때문이다.

하지만 사과마저도 단 맛 일색으로 바뀐지 오래다. 배와 사과가 누가 더 당도가 높은지 경쟁하는 꼴이다. 채소와 과일이 대체로 단 맛을 추구하며 개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본래 씨앗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바꿔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맛을 내기 위해서 라고만 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개량되지 않은 토종 씨앗으로 길렀을 때 맛과 향이 더 좋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자회사의 1차 소비자는 농민들이다. 종자회사는 농민들이 원하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품종을 개량한다. 농민들은 병충해에 강하고 단기간에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으며, 잘 팔리는 품종을 심으려 한다.

종자회사의 씨앗으로 기른 채소의 씨앗을 받아 다음해에 심으면 1대의 특성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잡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생태계의 교란이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은 때깔 좋은 채소만 고를 게 아니라 맛과 영양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종자회사들이 결국 최종 소비자의 선호를 바탕으로 품종을 개량하게 해야 한다. 고향집 마루에서 찬물에 밥 말아 매운 고추 반찬으로 점심 먹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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