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 업소’ 의 ‘참 고약한 서비스’ , 그리고 커피 칸타타
‘참 나쁜 업소’ 의 ‘참 고약한 서비스’ , 그리고 커피 칸타타
  • 관리자
  • 승인 2007.01.19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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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종 문 외식칼럼리스트
지난 연말,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친구들의 송년 모임이 끝난 후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뒷골목의 어느 커피 집으로 갔다. 그런데 우리는 홀 입구를 지키는 직원으로부터 ‘만원!’이라는 싸늘한 말과 함께 입장제지를 당했다.

중학생시절 마릴린 몬로의 영화 ‘나이아가라’ 이래 처음 당한 문전박대 푸대접이었다. 순간적으로 ‘빈 자리가 많은 데 웬 만원?’ 하며 따지듯 물었지만 ‘예약!’ 이라는 더 짧고 싸늘한 말대꾸를 들어야 했다. 정말 화가 났다.

하지만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꾹 눌러 참으며 친구들의 옷소매를 끌어 당겨 발길을 되돌렸다. 가제는 게 편이라던가 외식인의 한 사람으로 극소수 외식업체의 일시 망가진 모습을 친구들에게 더 이상 보여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쳇 말로 ‘참 나쁜 업소’ 의 ‘참 고약한 서비스’ 일 뿐이라고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게 이 스트레스 덩어리 세상을 사는 지혜라고 스스로 달래기로 했다.

‘묻지 마 커피 러버?’

나는 커피를 참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래서 참 많이 마신다. 시도 때도 없이 퍼 마신다. 잠 자리 들기 직전에도 마신다. 그래도 끄떡없다. 남들처럼 잠 못 들기는커녕 쿨쿨 잘도 잔다.

학생시절 당일치기로 날밤 새울 때, 물처럼 마셨던 커피가 만들어 준 내성과 저항력 탓이다. 그런데 정작 커피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다. 그야말로 왕 초
보다. 명색이 호텔과 외식업체의 대표를 지낸 외식 전문가라는 사람이 커피를 잘 모른다니 세상에…. 하지만 사실이다.

외식업체 대표 시절 커피 전문점을 창업하면서 공부를 제법 하노라 했는데도 그 모양이니 난들 어쩌겠는가. 그 뿐 아니다. 30여 년 전 우리나라의 대표적 건축가 중 한 분이었던 故 김수근 선생이 당신의 ‘공간’ 사랑에 차려 놓았던 프라이비트 커피 바 에서 손수 끓여 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들은 귀한 추억이 있지만 그저 아련할 뿐이다.

또한 10여 년 전에는 오래된 친구 내외가 경영하던 종합 커피 문화 전문점 ‘글로리아 진’을 들락거리며 커피 이야기를 귀 따갑게 들었지만 홀 구석구석 묻어났던 그윽한 향기가 코끝에 걸리고 멋진 음악만이 귓전을 맴돌 뿐, 커피 이야기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처럼 까마득하다.

이처럼 나의 커피지식은 그야말로 별로지만 커피 좋아하기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또한 좋은 게 좋다고 맛과 향이 좋은 것을 으뜸으로 치지만 그것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앞서 말한 故 김수근 선생의 ‘고 품격 커피’나 ‘글로리아 진’ 의 관능적인 ‘고급 섹시 커피’가 좋은 건 두 말할 나위 없지만, 이것저것 온갖 잡것 다 넣은 ‘다방 커피’와 ‘자판기 커피’도 즐기는 편이다. 음식점에서 서비스하는 ‘공짜 커피’도 싫어하지 않는다.

심지어 커피의 때깔을 진하게 한답시고 담배꽁초를 섞어 끓였다는 그 옛날의 일부 악덕 다방 커피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나야말로 진짜 ‘묻지마 커피 러버’가 아닐까.

바흐와 김수근, 그리고 커피와 음악

커피를 이처럼 좋아하다 보니 커피와 관련된 음악이 더욱 좋아졌다. 60~70년대 펄 시스터스의 ‘커피 한잔’(신중현곡)이 그 대표적 예다.

그리고 음악 자체는 커피와 별로 상관없지만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커피 집 분위기 때문에 좋아진 음악도 적지 않으니 박인수의 ‘봄 비’(신중현 곡) 와 나나 무스쿠리의 클래식 편곡 노래들이 그 그룹에 속한다.

하지만 커피와 관련된 음악 가운데 가장 빛나는 작품은 단연 바흐의 칸타타 제211번 ‘커피 칸타타’다. 이 작품은 커피만 탐하면서 커피를 좋아하는 신랑감을 찾아보겠다는 딸과 커피를 끊지 않으면 시집을 보내지 않겠다는 아버지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단순하고 경쾌한 음악으로 전개한 품격과 재미를 겸비한 작품이다.

오리지널 텍스트는 딸이 아버지의 요구에 따르는 것으로 돼있었지만 바흐는 딸이 결혼 후에도 커피를 계속 마시도록 수정했고 그 작품을 라이프치히의 커피하우스에서도 연주했으니 바흐의 커피사랑은 또 얼마나 지극한가.

그런데 앞서 말한 ‘참 나쁜 업소’의 ‘참 고약한 서비스’를 받은 사람이 가령 내 일행이 아니고 바흐와 김수근 같은 커피 문화 선각자들이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도 바흐는 오리지널 텍스트대로 딸이 완전히 커피를 끊는 것으로 마무리했을지도 모르고, 김수근 선생은 당신의 비영리 커피 바를 사업용으로 바꾸어 고품격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 유명한 ‘브루투스 여, 너 마저도..’ 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은 율리우스 카에자르(시이저) 처럼 ‘커피 집, 너 마저도?’ 라는 말을 남기며 커피 집은 더 이상 쳐다보지도 않고 출입을 딱 끊었을지도 모른다는 좀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6.25 전쟁 피난시절 미군용 인스턴트 커피를 혀로 핥아 먹으며 맺은 커피와의 인연은 이렇듯 길고 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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