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요리가 없어지는 시대에 산다
가정 요리가 없어지는 시대에 산다
  •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한국식품산업진흥포럼 회장
  • 승인 2023.06.2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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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여러 행위에서 고도로 숙련된 지적 산물이다. 비교적 인간 지능수준에 접근한다는 원숭이, 침팬지, 오랑우탄 등도 간단한 도구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요리한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요리는 주로 불을 이용해 가열하거나 다른 식재료를 섞어서 조합해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요리는 여성의 몫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한국에서는 더 극단적이다. 남성이 부엌에 들어가 요리하는 것을 꺼리는 것과 극히 대조적으로 중국은 여자들보다는 남자가 요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일부 예외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요리를 하는 일은 여성의 몫이었다. 자기 가족의 음식을 책임지는 것은 어머니나 할머니 등 여성이었고 이런 역할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에서도 밭농사와 논농사에 바쁜 일을 도와주면서도 끼니가 되면 먼저 부엌으로 들어가 세끼 밥상을 챙겼던 어머님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 많은 식구들에게 세끼 밥을 챙겨주고 빨래며 그 외에 가사 일을 해낸 것을 생각해보면 주부인 우리 여성들은 철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가정에서 하는 요리의 역할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근래 실감하고 있다. 완전조리돼 가공된 여러 종류의 식품이 각 슈퍼나 판매장 등에 넘쳐나고 있으며 완전조리가 아니더라도 거의 완벽하게 조합된 재료가 잘 포장돼 집에서 가열 기구에 바로 넣고 조리할 수 있게 완전 조합한 식품이 세트로 팔리고 있다. 찌개며 불고기 세트 등은 그대로 냄비에 쏟아 넣고 준비된 가스레인지나 인덕션 히터에 가열처리만 하면 바로 취식이 가능하다. 밥은 어떤가. 이미 조리돼 포장된 햇반은 전자레인지로 간단히 데워 바로 취식할 수 있다. 더욱 발전한 것은 HMR이란 가정간편식, 우리 밥상에서 먹을 수 있는 식탁을 조금 작은 공간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과 같은 조합, 포장된 상태에서 구입해 집에서 간단히 데우거나 약간 더 조미하면 한 끼 식사가 거뜬하다. 이런 편의식이 나오는데 과연 힘들여 음식을 조리할 필요가 있겠는가. 

실제로 요리를 하려면 목표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몇 가지의 주재료와 마늘, 생강, 고춧가루, 양파 등 각종 조미, 부재료가 필요하고 이들을 각각 시장에서 일정량씩 구매해 비축해 놓아야 한다. 이들 원·부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시장을 나가야 하고 이들 소재를 다듬고 요리에 사용할 수 있게 처리하는 데는 또 다른 시간을 들여야 한다. 원·부재료를 다듬고 처리하고 남는 쓰레기는 처리해야 하는 또 다른 일거리다. 이들 소재를 사는 가격은 어떤가. 대량으로 구매해 사용하는 제조공장과 비교가 될 것인가. 

최근 HMR 제품이나 도시락이 일반 직장인의 한 끼 식사를 책임지는 대체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고 코로나19 여파로 더욱 활성화됐으며 이런 추세는 쉽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조리돼 즉석 취식이 가능하다는 편의성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이 편리한 준비물이 있는데 시간 내서 원·부재료를 사오고, 다듬고, 조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값에 부담을 느낄 정도인가. 아니다. 하나씩 따져 봐도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가격은 아니다.

이러한 변화는 외식업계의 대응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HMR이나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는 사람들은 이전까지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고객이었다. 도시락은 이제 작은 구멍가게에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으며 전국적인 상호를 달고 시장 범위를 넓혀가는 회사도 여럿 등장했다. 이런 현상은 외식가격의 상승과도 연계돼 있으며 가성비 높은 식사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작용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요리는 쇠퇴하나 맛과 향을 중시하는 인간의 속성상 식당에서 정성스레 요리한 따뜻한 음식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멕시코에서 쌀과 콩이, 포르투갈에서 채소 수프가 사라진 후 가정에서 요리를 포기하면서 식단 관련 질병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정에서 요리된 음식은 배를 채우는 수단만이 아니라 가족의 마음을 담는 기회이며 예술작품을 즐기는 대상이다. 맛과 향, 그리고 입안에서 느끼는 촉감은 결코 세트화된 즉석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다. 더욱 질병 유병률과도 관련되며 인간의 본성에 연관되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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